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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난득호도(難得糊塗)
멍청해 보이기는 어렵다
 
이정랑 기사입력  2019/06/09 [10:08]

이정랑 언론인/논설고문/중국고전연구가

 

청나라 때의 서화가이자 문학가였던 정섭(鄭燮.-1693~1765년)은 자가 극상(克桑)이요. 호가 판교(板橋)로, 강소성 흥화(興化) 사람이었다. 어려서 집이 가난했지만 과거에 응시하여 강희(康熙) 황제 때 수재(秀才), 옹정(雍正) 황제 때 거인(擧人), 건륭(乾隆) 황제 때 진사(進士)가 되었다. 그 후 산동성 범현(范懸-지금의 하남성에 속함)과 유현(濰懸)의 지현(知縣)을 역임했는데 난(蘭)과 죽(竹)을 잘 그려 세상에서는 그를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한사람으로 꼽았다.

 

‘양주팔괴’란 강희‧옹정‧건륭 3대에 걸쳐 양주에서 그림을 팔던 ‘괴상한’ 화가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화풍뿐 아니라 사상이나 행동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양주팔괴’로 불렸다. 그는 관직에 있는 동안 농민들을 힘껏 돕고 어려운 일을 처리해주었으나, 그것이 도리어 권력가의 미움을 사 관직에서 쫓겨났다. 이때 그는 ‘난득호도’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총명하기도 멍청하기도 어렵지만, 총명함에서 멍청함으로 바뀌기란 더욱 어렵다.

 

이는 서로를 속고 속이는 봉건 관료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소극적인 처세 철학으로, 훗날 사람들에게 널리 본보기로 받아들여졌다. 어떤 사람은 이 ‘난득호도’를 처세의 경고로 여겨 정치적 권모술수와 외교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기도 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모여들지 않고, 사람이 너무 깐깐하면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 때로는 조금 멍청한 척하는 것이 지나치게 민감한 것보다 한결 유리하다.

 

2차 대전 중 미군 정보부는 미드웨이 전투에 앞서 일본의 암호를 성공적으로 해독함으로써 일본군의 해상 작전 부서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 작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순간에 냄새에 민감한 미국의 한 신문기자가 이 정보를 얻고는 특종에만 눈이 어두워 겁 없이 시카고 신문에 보도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경계심을 잔뜩 돋군 일본인들은 암호를 바꾸고 작전 부서를 조절할 수 있게 되어, 미국은 미드웨이 작전에서 수동적인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국가전쟁 정보의 누설로 인해 심각한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군 부서를 조정하기는커녕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처럼 행동했다. 그 결과 사태는 빠른 속도로 진정되었고, 일본 정보기관도 더 이상 이 사건을 중시하지 않아 그에 상응하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결과 미드웨이 전투는 미군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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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09 [10:08]  최종편집: ⓒ nanum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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