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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화만발'德華滿發']잘나도 나, 못나도 나
‘페르소나(Persona)’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가 하는 가면
 
덕산 기사입력  2019/07/08 [08:55]

덕산 김덕권(前 원불교 청운회장·문인협회장, 카페 '덕화만발 http://cafe.daum.net/duksan725' 운영)

 

잘나도 나, 못나도 나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안의 그 어떤 모습을 사랑할 것’인가요? 우리가 사랑해야 할 나의 모습은 선택적인 것이 아닙니다. 현재의 나, 과거의 나, 되고 싶은 미래의 나까지 포함해 모두를 사랑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요?

 
스위스의 정신의학자로 분석심리학의 개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 1875~1961)’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무의식의 층이 있다고 생각하였고, 개체로 하여금 통일된 전체를 실현하게 하는 자기원형이 있음을 주장했지요.

 

융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의 정신영역을 집단무의식이라 칭하며 이 개념을 원형이론과 결합시킴으로써 종교심리학 연구의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융의 이론 중에 ‘페르소나(Persona)’란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가 하는 가면을 말합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통상적으로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가면’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융은 자신의 한 단면인 페르소나를 자아(自我)와 동일시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왜냐하면 원형의 자아인 ‘있는 그대로의 나(I am)’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나 평생 물어온 질문이고, 아마 평생 정답은 찾지 못할 질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4월 15일에,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방탄소년단(BTS)’이 신곡 ‘페르소나’를 발표해 또다시 ‘빌보드 메인차트 1위’에 등극했다고 합니다. 이 ‘나는 누구인가?’가 방탄소년단의 리더 RM(본명 김남준)이 신곡 ‘페르소나’의 첫 소절에 거침없는 ‘랩’을 쏟아냅니다.

 

이 곡 ‘페르소나’는 ‘카를 융’의 이론 ‘영혼의 지도’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 곡을 들어보니 하도 랩의 속도가 빨라 저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방탄소년단’이 한국 가수로는 처음으로 2018년 9월24일 유엔총회 무대에서 연설에 나섰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리더 RM은 “사람들이 ‘BTS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면서,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실수하고 단점이 있지만 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며, “우리 스스로 어떻게 삶을 바꿀 수 있을까? 그건 스스로 사랑하는 것이다.” 7분간 이어진 진솔한 연설에 참석자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했지요.

 

그림자가 없는 불빛은 없습니다. 불빛만을 나의 참모습이라고 사랑한다면, 나의 다른 모습인 그림자를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정산(鼎山) 종사께서는《법어(法語)》<근실편(勤實編)>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려한 제 뿔만을 사랑하고 잘못 생긴 제 다리는 미워하던 사슴이 포수에게 쫓기어 숲속을 헤쳐 나올 때, 저를 살려 준 것은 잘못 생겼으되 잘 뛰어준 다리였고, 저를 죽일 번하게 한 것은 화려하되 숲에 거리끼기만 하던 뿔이었다.」

 

‘잘 나도 나고, 못나도 나임’을 지적하신 말씀이 아닌가요? 이 세상에 완전한 영혼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 불완전한 영혼도 사랑함으로서 원만구족(圓滿具足)한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택적인 것이 아니라 포용적인 것이 바로《일원상의 진리》입니다.

 

‘일원(一圓)’은 우주 만유의 본원(本源)입니다. 그리고 제불제성(諸佛諸聖)의 심인(心印)이며, 일체 중생의 본성(本性)입니다. 또한 대소유무(大小有無)에 분별이 없는 자리며, 생멸거래(生滅去來)에 변함이 없는 자리입니다. 또 선악업보(善惡業報)가 끊어진 자리며, 언어명상(言語名相)이 돈공(頓空)한 자리이지요.

 
그리고 공적영지(空寂靈知)의 광명을 따라 대소유무에 분별이 나타나고, 선악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언어 명상이 완연하여 시방삼계(十方三界)가 장중(掌中)에 한 구슬같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한《일원》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조화(造化)’가 우주만유를 통하여 무시광겁(無始曠劫)에 은현자재(隱顯自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많은 진리를 하나로 표현한 것이 곧 <일원상(一圓相)>인 것입니다.

 

이렇게《일원》은 이름 없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일원상》이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일원》은 바로 부처님의 심체(心體)를 나타낸 것으로 유무를 총섭(總攝)하고 삼세를 관통하는 것이지요. 또한 일원은 곧 진리의 당체(當體)이며,《일원상》은 진리의 펼쳐진 모습(相)을 나타낸 것입니다. 그 속성을 한 번 살펴 봅니다.

 

첫째,《일원》은 변(變)⦁불변(不變)을 표현합니다.

일원의 진리는 변하는 자리에서 보면 계속 변합니다. 그러나 불변의 자리에서 보면 항존(恒存) 불변인 것입니다.

 

둘째,《일원》은 공(空)⦁원(圓)⦁정(正)입니다.

공이란 무념 행(無念行)이고, 원이란 무착 행(無着行)이며, 정은 중도 행(中道行)으로서 실천하는 행위표준을 말합니다.

 

셋째,《일원》은 도(道)와 덕(德)입니다.

도란 ‘떳떳이 행할 수 있는 길’이며, 덕은 도를 행하고 나서 나타나는 결과를 말합니다.

 

넷째,《일원》은 이(理)와 사(事)입니다.

‘이’는 천조(天造)의 대소유무(大小有無)를 이름이요, ‘사’는 인간의 시비이해(是非利害)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와 사’는 우주와 인간 전체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섯째,《일원》은 동(動)과 정(靜)을 나타냅니다.

이는 진리의 근본모습입니다. 움직이는 측면에서 보면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나, 정의 측면에서 보면 여여자연(如如自然)하여 고정불변한 것이지요.

 

잘나도 나, 못나도 나입니다. 이렇게 <일원상의 진리>는 모든 것을 포용합니다. 우리 잠시 힘들고, 조금 못났다고 실망하면 안 됩니다. 힘들면 좋은 날도 올 것이고, 못나면 잘난 모습도 보일 날이 있지 않겠는지요!


단기 4352년, 불기 2563년, 서기 2019년, 원기 104년 7월 8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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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08 [08:55]  최종편집: ⓒ nanum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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