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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장농작아(裝聾作啞)
귀머거리인 척하고 벙어리인 척한다
 
이정랑 기사입력  2019/09/16 [12:20]

이정랑 언론인/논설고문/중국고전연구가

 

▲     ©조장훈대표기자

당나라 대종(代宗-763~779년 재위) 때 곽자의(郭子儀)는 ‘안사의 난’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큰 공을 세우고 당 왕조를 다시 일으킨 최고의 공신이 되었다. 대종은 그를 무척 존중하여 딸 승평(升平) 공주를 곽자의의 아들 곽애(郭曖)에게 시집보냈다. 그런데 이 젊은 부부는 각기 자기 부모들의 배경만 믿고 서로에게 고분고분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부부 싸움이 끊일 날이 없었다.

 

어느 날, 젊은 부부는 또 하잘 것 없는 일로 다투었다. 곽애는 아내가 너무나 잘난 척하며 남편을 근본적으로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에 분이 받쳐 불쑥 내뱉었다.

 

“당신이 뭐 볼 것 있어? 아버지가 황제라는 것만 믿고 큰소리지! 사실 말이지, 당신 아버지 강산이란 것도 알고 보면 내 아버지가 안록산을 물리쳤기 때문에 보전할 수 있었고, 내 아버지가 황제 자리에 연연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황제가 있을 수 있단 말이야!”

 

봉건사회에서 황제는 ‘유아독존’이요, ‘지존무상’ 이다. 누구라도 황제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9족이 몰살되는 끔직한 화를 당한다. 승평공주는 남편의 실로 대담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듣자 단숨에 궁중으로 달려가 아버지 대종에게 남편이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일러바쳤다. 공주는 황제인 아버지가 남편에게 중벌을 내려 자신의 분을 풀어줄 것으로 믿었다.

 

대종은 딸의 이야기를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애야, 내가 뭘 모르는 구나, 사실 네 남편의 말은 구구절절이 옳은 이야기란다. 지금의 천하는 네 시아버지께서 보전한 것이다. 만약 네 시아버지가 황제가 되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벌써 그렇게 되었을 것이고, 천하도 일찌감치 이씨 집안의 손에서 떠났을 게야.”

 

그러면서 대종은 남편의 말 한 마디를 가지고 ‘반란’이라는 끔찍한 누명을 씌우면 어떡하냐면서 싸우지 말고 잘 살라고 공주를 타일렀다. 아버지 황제의 이런 태도를 본 공주는 의기소침해서 시집으로 되돌아갔다.

 

이 일은 곧 곽자의에게 알려졌다. 곽자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두 아이의 부부 싸움이야 별것 아니지만 아들이 내뱉은 헛소리는 정말 반역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전전긍긍하던 곽자의는 아들을 붙잡아 오라고 엄명을 내린 다음, 급히 궁중으로 들어가 황제를 만나 아들에게 엄벌을 내려주십사 요청했다. 그러나 대종은 뜻밖에도 전혀 죄를 물을 뜻이 없다며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젊은 애들이 말다툼을 벌이다보면 말이 좀 지나칠 수 있지요. 그런 것을 가지고 우리 노인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야 되겠소?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안 되고서는 한 집안의 어른이 아니다’는 속담도 있지 않소? 여자들이 규방에서 하는 말을 어떻게 진짜로 믿을 수 있단 말이오. 우리 같은 노인들이 그런 얘길 들으면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어 못 들은 척해야지요.”

 

나이든 황제의 정감 넘치고 이치에 합당한 이야기를 듣고 무거웠던 곽자의의 마음은 순식간에 편안해 졌다.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일이 아주 사소한 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곽자의는 아들의 망나니 같은 언동을 따끔하게 나무라기 위해 귀가한 후 아들에게 볼기 수십 대를 치게 했다.

 

젊은 부부의 말다툼은 화가 뻗치면 앞뒤 가리지 않고 격한 말들을 주고받는다. 이 말을 모두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그런 집안은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을 것이다. 당나라 황제 대종은 ‘노인 노릇 제대로 하려면 못 본 척, 못 들은 척해야 한다’는 태도로 딸의 입방아를 그저 젊은 부부사이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사랑싸움으로 받아들임으로서 자칫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던 위기를 넘겼다. 그리고 그 부부는 마침내 좋은 사이가 되었다.

 

어떤 일들을 너무 진지하게 대하다 보면 더욱 골치가 아파진다. 그럴 때는 반대로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는 것이 한결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지도자로써 소속된 범위 내에서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찮은 일을 침소봉대하여 사람을 원망하고 심지어는 여기 저기 욕을 하고 다니며 지도자를 헐뜯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험 있는 지도자는 그 예봉을 피하고 다른 사람의 쓸데없는 말을 듣지 않는다. 사태가 잠잠해졌을 때 잘 생각해서 처리하면 그 효과가 훨씬 크다. 따라서 ‘장농작아’는 통치자의 정신적 수양을 위해 무시할 수 없는 책략이 될 수 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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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9/16 [12:20]  최종편집: ⓒ nanum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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