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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랑의 고전소통]상병벌모(上兵伐謀)
최상의 병법은 적의 계략을 분쇄하는 것
 
이정랑 기사입력  2020/01/20 [08:23]

이정랑 언론인/논설고문/중국고전연구

 

최상의 전쟁은 적의 계획을 분쇄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적의 외교를 파괴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무기로 정복하는 것이고, 가장 못한 방법은 적의 성곽을 공격하는 것이다. 성을 공격하는 방법은 부득이한 경우에 쓰는 것이다. (『손자병법』 「모공편 謀攻篇」.)

 

내 쪽의 계략으로 적을 패배시키는 것, 말하자면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병법을 ‘벌모(伐謀)’라고 한다. ‘상병(上兵)’은 가장 훌륭한 전쟁 수단을 가리키는데, 손자는 ‘벌모’를 가장 유리한 것으로 생각했다. ‘벌모’의 실질은 적이 막 계획하거나 계획을 실행하려 할 때, 그 계략을 간파하여 나의 정치‧군사 목적을 실현하는 데 있다.

 

조조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상병벌모’에 대해 다음과 같은 해석을 내리고 있다.

 

군사를 일으켜 멀고도 깊숙이 들어가 그 성곽을 점거하여 내외를 단절시킴으로써 적으로 하여금 굴복케 하는 것이 최상이다.

 

조조는 ‘상병벌모’의 목적이 강대한 군사적 역량을 근간으로 삼고 여기에 ‘벌병(伐兵)’과 ‘공성(攻城)’을 배합하여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한의 승리를 낚아 적 전체를 항복하게 만드는데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군사 투쟁의 해소를 위한 것도 아니고 죽어라고 싸우는 단순한 군사적 공격과도 다르다. 우수한 지휘자는 먼저 계략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을 중시한다. 피를 흘리지 않고 완전한 목적에 이르는 것 말이다.

 

기원전 204년, 한신은 조(趙)를 멸망시킨 다음 조나라 광무군(廣武君)의건의를 받아들여 군대를 쉬게 하고 조나라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변사를 연(燕)나라에 보내 곧 연나라를 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한편, 군의 위세를 한껏 떨쳐 보임으로써 연을 굴복시켰다.

 

『구당서 舊唐書』 「곽자의열전 郭子儀列傳」에 보면, 765년 토번(吐蕃)‧회흘(回紇)‧당항(黨項)‧강혼(羌渾)‧노자(奴刺) 등 변방 민족과 산적 임부(任敷)‧정정(鄭庭)‧학덕(郝德)‧유개원(劉開元) 등이 30만 군사를 이끌고 당을 공격한 기록이 나온다. 당나라 수도는 바야흐로 초긴장 상태로 돌입했다. 조정에서는 황급히 곽자의를 불러 군대를 맡겼다. 곽자의는 지금의 병력으로는 도저히 싸워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곽자의는 상대가 대부분 자신의 옛 부곡(部曲-주로 수공업자들이나 범죄자들을 따로 모아 살게 한 정치‧행정 단위)과 관련이 있고, 또 평소 자신에게 은혜를 입은 자들이 많기 때문에 저들이 차마 자신에게 칼날을 겨누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곽자의는 몇 명만 거느린 채 회흘 진영으로 곧장 달려갔다. 회흘의 여러 추장들은 말에서 내려 곽자의에게 절을 올렸다. 곽자의는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솔직 담백하게 약속을 어긴 그들을 나무랐다. 추장들은 사과했고, 곽자의는 곧 그들을 불러 연회를 베푸는 한편 비단 등의 재물을 주어 환심을 사고 애당초 맺었던 동맹을 회복했다. 곽자의는 회흘과 토번 사이의 알력을 이용하여 회흘과 동맹을 맺음으로써 토번을 고립시켜 물러갈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로써 당나라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위기가 해소되었다.

 

손자의 ‘상병벌모’ 사상은 중국의 수천 년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다른 근대 국가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손자신연구 孫子新硏究』 「총론」에 보면 독일의 빌헬름 2세가 실각하여 네덜란드로 망명을 갔다가 『손자병법』을 읽고 나서는 왜 좀 더 일찍 이 책을 보지 못했던가 하며 한탄하고 후회했다는 내용이 있다. 현대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발전하든 ‘상벌벌모’는 그 의의를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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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1/20 [08:23]  최종편집: ⓒ nanum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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