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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화만발'德華滿發']시련은 성공의 디딤돌이다
지하창고가 없었더라면, ‘미키 마우스’도 ‘디즈니랜드’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
 
덕산 기사입력  2020/06/29 [09:20]

덕산 김덕권(前 원불교 청운회장·문인협회장, 카페 '덕화만발 http://cafe.daum.net/duksan725' 운영)

 

미키마우스는 월트 디즈니사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입니다. 1928년 <증기선 윌리>로 데뷔한 이래 지난 90여 년간 애니메이션 장르 자체의 심볼로 여겨져 왔습니다. 현재 디즈니 캐릭터 산업 수익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미키마우스는 대중미디어예술이 배출해낸 전무후무한 슈퍼스타이지요.

 

그런 미키 마우스는 지금의 ‘월트 디즈니사’를 있게 해 준 아주 고마운 캐릭터입니다. 이 미키마우스를 탄생시킨 사람인 월트디즈니(1901~1966)는 자신의 출생에 의문을 품었던 사람입니다. 월트 디즈니는 그림에 취미를 붙이며 힘든 유년기를 극복했습니다.

 

그러나 만화가로 성공하고자 했던 그의 꿈은 소질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도 재능을 인정해주지 않자 스스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설립한 그는 미키 마우스의 성공을 발판으로 미국 애니메이션 산업, 캐릭터 산업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디즈니랜드라는 테마파크를 설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케이블, 위성, 음악, 레저 스포츠 등, 미디어 콘텐츠 분야를 망라한 글로벌 미디어 그룹이 되었지요. ‘시련은 성공의 디딤돌’입니다. 떠돌이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농촌의 조그만 마을에서 자란 소년은 전원풍경을 백지에 그리며 가난했어도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소년의 크레용에서 어느 날엔 시냇물이 흘러나왔고, 파란하늘도 펼쳐졌으며, 풀들도 부드러운 바람에 춤을 추곤 했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농촌에서 도시로 이사한 뒤, 신문 배달을 하던 소년은 신문 만화가를 꿈꾸며 남몰래 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에게 만화는 보석이었고, 꿈이었으며, 자존심이었습니다. 소원대로 소년은 자라 신문사 만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젊은이의 야심작과 자존심을 담당국장이 날마다 평가절하 하며 퇴짜를 놓았습니다.

 

“이걸 그림이라고 그리나? 차라리 그만 두는 게 어떨까?” 늘 이런 소리를 듣던 그는 급기야 어느 날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며 일했던 곳에서 명예퇴직을 당했습니다. 그는 실의에 빠진 채, 갈 곳을 몰라 방황하다가 고향인 농촌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농촌에서 한 교회의 지하창고를 빌려 쓰며 잡일을 했습니다. 지하창고의 어둠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지하창고가 보물창고로 변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상처를 받은 그는 창고를 뛰어 다니는 쥐새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예쁘고 친밀감 있게 쥐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쥐는 더 이상 징그러운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니 다정한 말벗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온 그림이 바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키마우스>입니다. 젊은이는 미키마우스를 만든 다음, 메리 포핀스, 신데렐라, 피노키오, 피터 팬 등과 같은 만화영화를 만들어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특히 대공황이 휘몰아치던 1933년, 늑대의 대항해, 벽돌집을 짓는 돼지의 모험을 그린 ‘세 마리의 작은 돼지’라는 영화를 제작, 당시 암울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던져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디즈니에게는 참혹한 지하창고가 사실은 보물창고였습니다. 가장 암울한 때, 창조와 기회의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그에게 지하창고가 없었더라면, ‘미키 마우스’도 ‘디즈니랜드’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혹여, 지금의 처지나 제일 미운 친구, 싫은 동료가 내일의 별이거나 보물창고가 아닐까요? 오늘 조금 힘들더라도 밝은 내일의 희망을 가져야합니다. 저 역시 젊은 시절 모진 시련과 방황을 피해 갈 수는 없었습니다. 6남매의 맏이로 가난한 서울 중앙시장의 쌀장사의 아들로 어린동생들을 키워 냈습니다.

 

그러나 물려받은 재산 한 푼 없이 그 막중한 짐을 견디다 못해 실패와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야말로 희망도 없고, 살아갈 의욕도 없어 방황과 방황을 거듭했습니다. 그 어둠의 터널을 지나가자 희망의 빛이 저를 비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찬란한 빛이 바로 《일원대도(一圓大道)》였습니다.

 

일원대도를 만나자 제가 그처럼 암울했던 시절의 책임이 바로 제 자신이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 사는 법을 깨친 것입니다. 모두가 다 <내 탓>이었습니다. 그로부터 근 40년의 세월을 《일원대도》의 신앙과 수행에 몰두 해왔습니다. 그야말로 <지성여불(至誠如佛)> 정신으로 달려 온 것입니다.

 

지극한 정성이 바로 부처이고 신(神)입니다. 그 정성이 오늘의 저를 만든 결과였습니다. 원(願)도 한(恨)도 없습니다. 아마 저만큼 행복한 사람이 이 세상에 저 보다 더 많기는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네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6월 29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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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6/29 [09:20]  최종편집: ⓒ nanum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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