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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화만발'德華滿發']무아정(無我亭)
신선(神仙)이나 도인(道人) 따로 없는 분
 
덕산 기사입력  2020/09/01 [08:41]

덕산 김덕권(前 원불교 청운회장·문인협회장, 카페 '덕화만발 http://cafe.daum.net/duksan725' 운영)

 

지리산에 가면 누구나 주인이 될 수 있는 집이 있다고 합니다. 하룻밤은 물론 닷새까지는 침식이 무료로 제공되는 곳입니다. 더 묵고 싶다면 닷새가 지나 아랫마을에 내려가 하루를 보내고 다시 찾으면 그만이라네요. 그것도 진정 필요한 이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방편이라니 이 메마른 세상인심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요?

 

평소 ‘나’ 없음을 주장하고 나누는 삶을 살자고 외치고 사는 저로서는 참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무아정(無我亭)’은 주인이 있으되 주인 행세를 하지 않는 곳입니다. 주인은 그저 밥해주고, 이부자리 챙겨주며, 차를 대접하니 신선(神仙)이나 도인(道人) 따로 없는 분이십니다.

 

그 ‘주인 없는 집’ <무아정>이 자리 잡은 곳은 지리산 ‘청학동 박단골 상투머리’에 있습니다. 절간 같은 한옥 건물 두 채엔 6개의 방이 있어 비좁게는 40명까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마루에 앉으면 겹겹으로 중첩된 지리산 자락의 골골들이 사열을 받듯 도열해 있습니다.

 

지리산과 결혼했다는 짧은 승려 머리의 50대 후반 주인은 저녁이 되자 밥을 안치고 반찬을 만드느라 바쁩니다. 무아정을 찾은 한 여성이 도우려 하지만 한사코 뿌리치며 편안히 쉬라고 말합니다. 밥을 짓는 사이 방문객들은 이방 저 방을 둘러봅니다. 가지런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품이 도저히 남성의 손길이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라고 합니다.

 

빨아서 차곡차곡 개켜놓은 수건과 황토와 감물을 들인 면(綿) 이부자리는 어느 특급호텔 못지않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방 한쪽에 놓여 진 발재봉틀로 이부자리를 다 손수 만들었다고 하니 놀라운 일입니다. 방바닥은 무명천을 바르고 콩댐을 해 어린 시절 고향 안방에 누운 기분입니다.

 

밥이 다됐다는 소리에 방문객들은 통나무로 만든 밥상이자 찻상에 빙 둘러앉습니다. 저녁상은 구수한 된장과 산나물들로 그득합니다. 누군가가 가져온 삼겹살을 구워 쌈을 싸먹으니 꿀맛이 따로 없습니다. 소주 한 잔씩이 돌아가고 술기운이 오르자 무아정 주인이 산에서 나는 각종 열매와 약초로 담근 술을 내놓습니다.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왜 이런 곳에 혼자 사느냐? 돈을 받지 왜 그러냐? 등등. 세상 사람들의 눈높이론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던 주인이 음악 하나를 틀어줍니다.

 

무아정에 인연 따라 왔거든 무거운 마음의 짐일랑 내려놓고 가라 합니다. 대금산조에 실린 장사익의 <뜨거운 침묵>이 흘러나옵니다.

 
「모래알 같이 많은 사람/ 하필이면 왜 당신이었나./ 미워서도 아니고/ 좋아서도 아니다./ 너무나 벅찬/ 당신이기에 말없이/ 돌아서서 조용히 가련다./ 별같이 많은 사람/ 하필이면 왜 당신이었나./ 잘생겨서 아니고/ 못나서도 아니다./ 너무나 높이 뜬/ 당신이기에 고개 숙여/ 걸으며 두 눈을 감는다.」

 
주인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춥니다. 객들도 한데 어우러지네요. 금방 방 안이 춤판으로 변했습니다. ‘내가 없으니(無我) 모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소리 한가락을 뽑아댑니다. 대금과 장구가 장단을 맞춥니다. 주인은 다만 지극정성으로 ‘사람들 마음의 발’을 닦을 뿐입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저 좋은 마음들을 듬뿍 담아 가지고 각자 처소에 돌아가 그 마음을 나누기만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극진히 대접받은 자만 남을 대접할 수 있는 법입니다. 방문객이 없을 땐 그는 빨고 닦느라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무아정 선방'의 청소부이자 관리원이 되는 것이지요.

 
그는 베트남전에 참전, 총탄을 맞아 상흔을 지닌 상이용사라고 합니다. 생사를 넘나들었고 돈도 벌어본 셈이지요. 그런데 나이 마흔을 넘기면서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이 부질없어 보였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무엇이 제대로 살아가는 삶인가 고민했습니다. 마침내 지리산 골짜기를 ‘다비장(茶毗場)’으로 삼는다는 각오로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무아정을 지었습니다. 이제 지리산 생활 9년째를 넘겼습니다. 그에게서 삶의 도(道)는 사람들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것입니다. 뺨을 때려도 밥을 해줄 수 있는 마음, 손님들이 미안해하지 않게 마음을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그에겐 모두가 도의 세계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무아정을 찾은 사람은 4,0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쌀독이 바닥난 적은 없습니다. 신기하게 쌀이 떨어질 만하면 다시 채워집니다. 생활비는 상이군인 연금으로 충당합니다. 100만원도 안 되는 돈이지만, 국민세금으로 충당되는 것이니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이지요.

 

어떻습니까? <덕산재(德山齋)>에는 방이 2개 여유가 있습니다. 지친 영혼을 쉬시려는 분이 계시면 언제나 모시는 영광을 주시면 어떨 까요!

 

단기 4353년, 불기 2564년, 서기 2020년, 원기 105년 9월 1일

덕 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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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9/01 [08:41]  최종편집: ⓒ nanum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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