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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화만발'德華滿發']아름다운 깨달음
지식이 ‘겸손’을 모르면 ‘무식(無識)’만 못하고, ‘높음’이 ‘낮춤’을 모르면 존경을 받기 어렵다
 
덕산 기사입력  2022/09/26 [09:42]

덕산 김덕권(前 원불교 청운회장·문인협회장, 카페 '덕화만발 http://cafe.daum.net/duksan725' 운영)
 

참으로 세월이 빠릅니다. 폭염(暴炎)과 태풍에 여야 정쟁에 온 나라가 시끄럽게 난리를 치렀습니다. 그러나 어느덧 그 난리 다 지나가고 중추가절(仲秋佳節)도 지나 또 한 살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네요.

 

그걸 우리는 ‘연륜(年輪)’이라고 합니다. 곧 어른이 된다는 뜻이지요. 지식은 배우고 익히면 될 것이나, ‘연륜’과 지혜(知慧)는 반드시 밥그릇을 비워내야 합니다. 그러기에 나이는 거저먹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노년의 아름다움은 ‘성숙"(成熟)’입니다. ‘성숙’은 ‘깨달음’이요, ‘깨달음’은 ‘지혜’를 만나는 길이지요. 그렇습니다. 노년은 손이 커도 베풀 줄 모른다면, 미덕의 수치요. 발이 넓어도 머무를 곳이 없다면, 부덕(不德)한 까닭이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식이 ‘겸손’을 모르면 ‘무식(無識)’만 못하고, ‘높음’이 ‘낮춤’을 모르면 존경을 받기 어렵지요. 그러니까 세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로 하여 세상이 무거운 것이고, 세월이 나를 쓸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로 하여 외로운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멋과 인생의 맛이란 깨닫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채근담(菜根譚)》에 <심덕승명(心德勝命)>이란 말이 있습니다. ‘마음의 덕을 쌓으면 운명도 바꿀 수 있다.’라는 ‘고사성어(故事成語)’이지요. 덕을 베풀지 않고 어찌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어찌 행운이 찾아들 것이며, ‘복(福)과 운(運)이 찾아올 수는 있을까요!

 

신라 선덕여왕 때의 ’자장율사(慈藏律師 : 590년~658)‘에 이런 말이 전해옵니다. 관세음보살을 꼭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백일기도에 돌입했지요. 99일째 되는 날, 얼굴이 사납게 생기고, 곰보에 한쪽 팔과 다리가 없는 사람이 거지 같은 꼴을 하고 도량(道場)에 들어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자장 너 있느냐? 얼른 나와라.”라며 큰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상좌들과 불목하니들이 말리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지금 기도 중이시니 내일 오십시오.” 사정하고 달래느라 조용하던 도량이 순식간에 야단법석 난리가 났습니다. 이때 기도를 마치고 방으로 가던 ’자장‘이 점잖게 말합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내일 다시 오시오.” 하며 자신의 방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그 거지가 큰소리로 웃으며 말합니다. “네 이놈 자장아, 교만하고 건방진 중놈아, 네놈이 나를 보자고 백일 동안 청해 놓고 내 몰골이 이렇다고 나를 피해?” “네가 이러고도 ‘중’질을 한다고?”라며 큰 소리로 비웃으며 파랑새가 되어 날아가 버렸습니다.

 

‘자장율사’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나를 찾아온 관세음보살을 외모만 보고, 자신도 모르게 젖어 든 교만하고 편협한 선입견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잣대 질 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바랑 하나만 메고 스스로 구도의 길을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스스로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수호천사와 보살을 못 알아보는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런 것을 시켜도 되겠지,’ ‘이 사람은 이 정도는 이해하겠지,’ ‘이 사람은 이 정도는 서운하지 않겠지,’ ‘이 사람은 이 정도는 빼앗아도 되겠지,’

 

세상에서 나보다 못난 사람은 없습니다. 어쩌면 그분들이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인정해주고 보듬어주는 보살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수호천사를 막 대해서야 어디 쓰겠는지요? 처처가 불상이요. 사사가 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입니다. ‘나보다 아랫사람은 없습니다. 모두가 부처요, 일 일마다 불공 드리는 심정으로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운’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덕’이고, ‘겸손함’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하늘에 뭔가를 간구(懇求)하고 갈망(渴望)할 때는, 나는 이웃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우리 ‘덕화만발’을 위해서 무엇을 주려고 노력하였는가 하고 먼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덕’과 ‘운’은 나누면 나눌수록, 베풀면 베풀수록 커지고 쌓여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을 잘 사는 방법이고, 도리이며, 인류애가 아닐까요? 좋은 친구는 곁에만 있어도 향기가 나고, 좋은 말 한마디에 하루가 빛이 납니다.

 

《정산종사법어(鼎山宗師法語)》 <무본편(務本編)> 18장에 “공덕을 짓는 데에 세 가지 법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는 심공덕(心功德)입니다.

남을 위하고 세상을 구원할 마음을 가지며, 널리 대중을 위하여 기도하고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둘째는 행공덕(行功德)입니다.

자신의 육근(六根 : 眼·耳·鼻·舌·身·意) 작용으로 덕을 베풀고, 자기의 소유로 보시하여, 실행으로 남에게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법공덕(法功德)입니다.

대도 정법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아 그 법륜(法輪)을 시방 삼세에 널리 굴리며, 정신 육신 물질로 도덕 회상을 크게 발전시키는 공덕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조금은 바보같이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 육신 물질로 무조건 베풀며, 세상을 위하여 맨발로 뛰는 것입니다. 그것이 쌓이고 쌓으면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노년의 아름다운 깨달음이 아닌지요!

 

단기 4355년, 불기 2566년, 서기 2022년, 원기 107년 9월 26일

덕산 김 덕 권(길호) 합장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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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2/09/26 [09:42]  최종편집: ⓒ nanum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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