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한류와 한글, 그리고 ‘광화문’

최진희 | 입력 : 2024/07/17 [11:37]

이관규(고려대 교수)

 


1. 

대한민국은 이미 2021년 독일 베를린 회의 등을 통해서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을 받고 있다. 2024년 현재 한류의 바람은 전 지구촌을 강타하고, 드라마, 음악, 음식, 게임, 기술 등 다양한 분야로 펼쳐지고 있는 한류 문화의 중심에는 우리의 자랑스런 한글이 있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열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한글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로서도 그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2022년 9월 이탈리아 베네치아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는 100명 정원에 900명이 지원해 한류의 열기를 피부로 느꼈다며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2023년 8월에는 서울에서 이스라엘 히브루대학 동아시아학과 교수를 만났는데, 한국어 열기가 중국어나 일본어를 압도해 학생들이 무척 늘어났다며 이런 한류 흐름을 타고 예루살렘에 세종학당을 세우고 싶다는 계획을 말하기도 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인디애나주립대학 등 여러 곳에서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대학원 과정이 신설되는 등, 전세계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열기는 한층 뜨겁게 확산되고 있다. 2024년 6월말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덴세대학에서 열린 국제한국어응용언어학회에서는 한류 확산에 따른 미주, 유렵, 아시아의 한국어교육 현황이 조망되기도 하였다.   

 

2. 

지난 5월 14일 문화관광체육부 장관은 627돌 세종대왕 나신 날에 열린 기념 행사에서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교체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이에 부응해 한글학회, 한글문화연대 등 한글 관련 단체들은 5월 27일 공동성명을 내고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바꾸는 것은 우리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살리고 미래지향적으로 우리 문화를 세계에 펼치는 중요한 일"이라며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집중되는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고 한글을 더욱 빛내자"라고 주장하였다. 광화문 현판이 가지는 문화적 정체성과 한류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로부터 내려온 고정된 가치가 아닌 현재를 사는 국민의 참여로 새로운 미래가치를 만드는 '국가유산'”, 이 말은 지난 5월 17일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새로이 누리집에 소개한 영상에 나오는 표현이다. 실로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의 삶을 반영하며 나아가 미래를 지향하겠다는 국가유산청의 강한 전향적 의지가 함축적으로 담긴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여러 곳에서 “門化光”이라는 한자 현판을 ‘광화문’이라는 한글 현판으로 바꾸자는 의견을 내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주무부처인 문화유산청은 “고증과 복원은 가장 마지막 있을 때의 원형으로 살리는 게 원칙”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누리집에 소개된 '국민의 참여로 만드는 미래가치'라는 표현은 공수표인가? 고증과 복원에서 원형을 살린다는 일반론적 근본 취지에는 당연히 공감하지만, 이 원칙이 “門化光” 한자 현판에 그대로 적용되어도 괜찮은 것일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상흔을 딛고 1968년 복원된 광화문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쓴 한글 '광화문' 현판이 걸려 있었다. 이후 광화문 복원 사업이 추진되면서 문화재청은 지난 2005년 한글 현판을 한자 현판으로 교체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다. 정치권과 한글 단체의 강한 반발이 있었지만, 2010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알고보면 유래도 부끄러울 한자로 된 현판이 광화문에 버젓이 걸렸다. 이후에 있었던 현판 균열, 글자 색의 금박 동판 등 여러 논란은 논외로 한다.

 

정작 중요한 논점은 광화문 현판에 한자를 고수하는 것이 '고증과 복원의 원칙은 물론 국민의 참여로 만드는 새로운 미래가치에 정말 부합하느냐'라는 것이다. 문화재의 원형과 역사성 강조는 조상의 문화유산이라는 국민의 자부심과 국가적 기품이 공감으로 자리했을 때 그 의미가 더 클 것이다. 광화문의 한자 현판이 과연 그러할까? 그 정도로 꼭 한자 현판을 고수해야 할 만큼 역사적 가치와 자부심이 남다른 현판일까?

 

우리는 한자로 된 현판이나 명판을 올린 문화유산을 국내 명승지 곳곳에서 발견한다. 그 한자 문화유산이 필자의 눈에 그리 거슬려 본 기억은 없다. 국어학자인 필자는 한자 문화가 우리의 혈맥 속에 면면히 살아 숨 쉬는 소중한 민족의 문화자산이라는 견해에 공감한다. 또한, 한자로 기록된 문화유산은 제작 당시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경우가 대부분이며,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근사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경우도 많다.

 

▲ 2024년 6월말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덴세대학에서는 국제한국어응용언어학회가 열렸다. 


3.

그런데, “門化光” 한자 현판도 과연 그러한가?

 

현재의 “門化光” 한자 현판은 1865년 경복궁 중건 당시 훈련대장이자 영건도감 제조(공사 책임자)였던 임태영의 글씨가 복원됐다. 임태영은 어떤 인물인가? 지난 2023년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광화문 현판의 한글화를 촉구한 이병훈 국회의원은 “임태영은 1859년과 1860년 천주교도 탄압적 사건인 경신박해를 주도한 인물”이라며 “당대를 대표하는 인물도 아니었고, 추사나 한석봉처럼 예술성이 뛰어난 글씨도 아닌데다, 종교인을 박해한 인물로 복원할 가치가 없는 글씨”라고 단정지어 말했다.

 

임태영은 1859년 헌종 말기 좌변포도대장을 지내면서 30여 명의 천주교도를 체포하며 방화와 약탈을 자행했는데 그 행위가 가혹한 점을 들어 파면됐다. 그럼에도 임태영은 고종 즉위후 섭정을 맡은 흥선대원군의 비호로 다시 훈련대장에 중임됐고 1865년 시작된 경복궁 중건공사의 책임자로 임명됐다. 그가 당시 경복궁의 남문인 광화문 글씨를 썼다는 사실은 2005년에 발견된 ‘경복궁 영건일기’를 통해서 확인됐다.

 

경복궁 중건은 1865년(고종 2)부터 1872년(고종 9)까지 흥선대원군의 주도로 진행됐다. 지금은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유산으로 남았지만 중건 공사 당시에는 여러 폐해를 일으키며 백성들의 큰 원성을 샀다. 처음에는 백성과 관리들에게 고루 원납전이라는 기부금을 받고 부역에도 신중을 기해 민원을 크게 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다음해 3월 목재장에 큰 불이 나서 공사에 지장이 생기자, 목재 · 석재를 각 지방에서 모아들이고 심지어는 양반의 묘지림까지 마구 베어 건축자재를 확보하는 외에도, 원납전을 받고 벼슬을 파는가 하면 문세(門稅)를 부과하고 급기야는 당백전(當百錢)을 발행해 당시 국가와 서민경제를 결정적 파탄으로 내몰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경복궁 중건의 공사를 맡은 감독관이 임태영이었다. 공교로운 내용은 또 있다. 헌종 말기 임태영이 9개월에 걸쳐 벌인 경신박해는 당시 조정 실세들의 반대에 부딪쳐 심각한 천주교인 탄압으로까지 비화되지는 않았지만, 그 몇년 후 고종의 섭정으로 정권을 장악한 흥선대원군은 강경한 쇄국정책을 펼치며 1866년(고종 3)부터 6년동안 천주교인 8천여명을 희생시킨 병인박해를 일으켰다. 이 사건은 수많은 억울한 희생자 뿐만 아니라 조선의 외교적 고립과 일본이 침탈한 조선 망국의 시발점을 제공한 통한의 역사적 과오로도 기록된다. 다만, 1859년 벌인 천주교인 박해로 파직을 당했던 임태영은 흥선대원군의 최측근으로서 1866년부터 10년동안 경복궁 중건 감독관으로 일했으므로, 1865년부터 6년간 자행된 병인박해에 직접적으로 관여되었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도대체, 왜 이러한 임태영의 글씨를 기어코 광화문 현판으로 남겨 광장을 오가는 우리 국민들과 이곳을 방문하는 수많은 외국인들의 손가락질을 자초하려는 것인가? 단순한 한글, 한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이왕에 원 제자의 글씨가 문제가 있어서 교체하기로 결정된다면 광화문 현판을 한자로 고집해야 할 다른 뚜렷한 근거가 없는 한 전세계인이 부러워하고 칭송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글로 광화문 현판 글씨를 만들어 올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4. 

인습과 전통은 분명 다르다. 인습은 이전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습관으로 흔히 극복해야 할 것이고, 전통은 계승해야 할 사상ㆍ관습ㆍ행동 등의 양식을 뜻한다. 그래서 ‘전통 계승’, ‘전통 의상’, ‘전통 놀이’라고 하면서 보존하고 보전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현재의 문화 창조와 관계가 없는 것을 우리는 문화적 전통이라고 할 수가 없다. 현재도 그렇지만 미래지향적인 대한민국에서는 창조적인 문화를 이어나가고 발전시켜야 할 전통을 지향해야 한다. 따라서, 임태영이 썼다는 현재의 “門化光” 현판은 즉시 철거하고, 한글을 창제하고 한류의 근원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세종대왕과 관련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 글씨체 “광화문” 현판으로 교체해야 한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 여행을 많이 한다. 소위 깃발여행을 하면서 한류를 즐기곤 한다. 그들 역시 한국에 오면 광화문을 찾는다. 중국인 여행 가이드는 한국의 발전상을 여러모로 설명해 주곤 한다. 그러면서 경복궁을 배경으로 하여, 즉 광화문 한자 현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면 “저것 보세요. 아무리 한국이 발전했다고 해도 결국은 중국에 속한 나라 아닙니까?”라고 말하곤 한다. 한국의 음식이나 의복이나 문화도 중국 문화의 일부라고 중국에서는 말한다고 한다. 나중에는 한글도 중국 문화라고 말하지 않을까 겁난다.

 

창조적 역사, 창조적 전통은 주어지는 게 아니라 개척하여 만드는 것이다. 버려야 할 인습을 버리고 계승 및 발전시켜야 할 전통을 속히 세워야 할 것이다. 한류, 한글, ‘광화문’, 함께 이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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